중년 한국 여성들, ‘피부 임대’로 생계 유지
17/11/2025 09:30
한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수십만 명의 중년 여성들이 피부 건강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화장품 임상시험에 참여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58세 강영희 씨는 볼 피부가 약간 붉다는 이유로 시험 참여가 거절되자 우울한 표정으로 임상시험 센터를 빠져나왔다. 그는 10년째 이른바 ‘피부 단기 노동’을 해왔으며, 다음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피부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료비가 훨씬 더 비쌈에도, 한 번 참여 시 받는 보수는 2만 원에 불과하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에요. 다음에 또 떨어지면 정말 큰일이에요.”
강 씨는 결혼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뒤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했지만 50세를 앞둔 나이에 계속 실패를 겪었다. 흔히 말하는 ‘경력 단절 여성’이 된 그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 화장품 임상시험을 택했다. “내 피부를 내어주는 게 그래도 제일 쉬운 일이니까요.”라고 털어놓았다.
중년 여성 대다수… ‘피부 노동자’라는 자조적 호칭까지
강 씨의 사례는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8월, 코리아일보가 화장품 임상시험 참여자 25명을 인터뷰한 결과 대부분이 가정을 위해 직장을 포기했던 중년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부로 돈 버는 단기 노동자’라고 불렀다.
해당 신문 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1,000건의 의약·화장품 임상시험이 진행되며, 2024년에는 약 16만 명이 시험에 참여했다.
또한 안상훈 국회의원실이 19개 시험기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2024년 임상시험 참여자 약 32만 9천 명 중 40대 이상이 전체의 4분의 3, 그중 50대 이상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성별 비율에서는 **여성이 93%**로 남성보다 14배 이상 많았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도 유사했다. 8월 4일 오전 서울 P·H, 경기 D 등 3곳의 대형 시험기관 대기실에는 36명 중 남성이 단 두 명뿐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46세 여성은 “여기 전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에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불안정한 일자리의 그림자… 마지막 생계 수단으로 선택
2023년 여성 경제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취업한 여성은 전체의 약 절반 수준으로, 남성 대비 약 19%p 낮다. 일자리 선택권이 제한적인 중년 여성들에게 피부 임대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 되고 있다. ‘자발적 참여’라는 명목 탓에 보호·감독 체계도 허술하다.
20년 전 프로그래머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던 50세 이모 씨는 “애들 과자라도 사주려고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 거의 매주 여러 기관을 돌아다녔으며, 보상이 큰 시험일수록 흉터나 가벼운 화상 위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혈청 제품 검증 시험에 참여했다가 발진이 발생해 2개월 동안 가려움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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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보수… 그럼에도 높은 경쟁률
피부 시험 참여 보수는 대체로 2만~3만 원 선이다.
한국일보가 8월 6일~9월 19일 동안 P·H·D 기관 홈페이지의 모집 공고 483건을 분석한 결과, 86건은 최저임금(시급 10,030원)보다 낮은 보수를 지급했으며, 일부는 6,000~8,000원만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험 일정이 지연돼도 추가 보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20분 이상 지각 시 보상 없음”을 명시한 기관도 있었다. 여드름 피부가 필요한 특수 시험은 평균 13,741원 수준으로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참가 희망자는 여전히 많다. 여러 기관이 대량 모집을 위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3회 참여 시 8만 원 지급”과 같은 문구로 지원을 유도한다. 일부는 부작용 위험을 숨기기 위해 “신제품 무료 체험 기회”라고 강조해 광고하기도 한다.
10년 경력의 50대 여성은 “여긴 그쪽이 갑이고 우리는 을이라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제품 설명도 대충하고 질문만 조금 해도 표정이 싹 변해요. 그 뒤로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해요.”
참가자들의 가장 큰 공포는 ‘잘리면 끝’이라는 것이다. 서진경 씨는 “제품을 바르고 가려워도 말하면 돈도 못 받고 쫓겨날까 봐 무서워요.”라고 털어놓았다.
30대 여성 한 명은 50회 이상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시험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추가 보상을 요구한 참가자가 이후 모든 시험에서 ‘블랙리스트’ 처리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H 건물 앞에서 만난 이종희 씨는 취재진을 보자 주변을 불안하게 살폈다.
“여기 직원이 제가 인터뷰하는 거 보면 끝이에요. 바로 잘릴 거예요.”
그는 인터뷰 내내 속삭이듯 말하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기사: 호앙옌 / 인용: 한국일보







































































































